침묵의 제도

독일의 Elternzeit는 세계에서 가장 관대한 제도 중 하나로 꼽힌다.
부모는 아이의 탄생 이후 장기간 일을 쉬는 선택을 할 수 있고, 그 시간 동안 고용은 법적으로 보호된다. 돌아왔을 때의 지위 역시 제도상으로는 변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몇 달의 공백만으로도 복귀 이후의 시선을 의식해야 했던 경험을 가진 나에게, 이 제도는 처음엔 거의 이상에 가깝게 느껴졌다. 개인의 삶을 국가가 제도의 언어로 존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에서 이 제도가 실제로 작동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 또 다른 층위가 보이기 시작한다. 문제는 휴직의 길이 자체라기보다, 그것이 반복 가능하고 예측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공백은 대체 인력으로 즉시 메워지지 않는다. 특히 전문성이 축적된 직무일수록 그렇다. 새로운 인력이 투입되더라도 업무의 맥락과 책임을 완전히 이어받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사이 팀은 속도를 조절하고, 업무의 리듬을 다시 짠다. 휴직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 영향은 간접적이고 구조적인 방식으로 조직 전체에 남는다.

그럼에도 이런 부담은 쉽게 말해지지 않는다. Elternzeit는 독일 사회에서 강하게 보호되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조직이 인력 공백의 어려움을 언급하는 순간, 그것은 부모 개인을 향한 비난처럼 읽힐 수 있다. 팀 내부에서도 비슷한 침묵이 반복된다. 이미 휴직을 다녀온 사람도 있고, 앞으로 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도 많다. 누구나 잠재적인 ‘휴직자’인 구조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스스로의 권리를 흔드는 행동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부담은 말 대신 조정으로, 조정 대신 인내로 흡수된다.

이 침묵은 개인의 커리어에도 흔적을 남긴다. 휴직이 길어지거나 반복될수록, 복귀는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재적응에 가까워진다. 그 사이 팀은 재편되고, 업무 방식과 기술 환경은 달라진다. 제도는 자리를 보장하지만, 관계와 흐름까지 되돌려주지는 않는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보이지 않는 비용은 개인만의 몫도, 조직만의 몫도 아니다. 다만 그것이 명확한 책임으로 이름 붙여지지 않을 뿐이다.

이 구조는 특히 여성의 커리어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독일에서 부모휴직은 성별과 무관한 권리지만, 실제로는 여성이 더 길고 더 자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장기 공백의 가능성 역시 여성에게 더 강하게 귀속된다. 공식적으로는 평등한 제도처럼 보이지만, 실제 운영 과정에서는 이러한 공백이 불안정성으로 해석되기 쉽다. 주요 프로젝트에서 자연스럽게 제외되거나, 승진의 속도가 늦춰지는 일은 반복적으로 관찰된다. 제도는 차별을 금지하지만, 조직은 여전히 ‘다시 비울 가능성’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결국 Elternzeit는 보호를 위해 설계되었지만, 의도하지 않은 차별을 함께 만들어내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질문은 개인의 선택을 향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을지, 얼마나 쉴지는 어느 사회에서나 개인의 자유다. 문제는 그 선택이 어떤 방식으로 조직 안에서 흡수되고 있는가다. 조정과 침묵에 의존한 채 같은 구조가 반복될 때, 그 비용은 서서히 누적된다. 프로젝트의 연속성은 약해지고, 조직은 점점 더 보수적으로 움직인다. 변화보다 안정이, 실험보다 회피가 선택되는 순간들이 늘어난다.

이런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큰 충돌 없이 작동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구조가 산업 전반에서 반복될 경우, 그 영향은 더 이상 개인이나 한 팀의 문제가 아니다. 민첩성과 재편 능력이 요구되는 환경에서, 반복되는 공백을 내부 조정으로만 흡수하는 방식은 점차 한계에 가까워진다. 독일의 Elternzeit가 곧바로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권리를 유지하는 방식이 계속해서 침묵과 인내에 의존할 때, 그 부담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는 더 이상 사적인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Elternzeit는 여전히 독일 사회가 자랑할 만한 제도다. 그러나 제도가 오래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 제도를 떠받치는 구조 역시 함께 조정되어야 한다. 친절한 권리는 말해지지 않는 비용 위에서만 지속될 수 없다. 침묵 속에서 잘 작동하는 시스템은, 어느 순간 조용히 균열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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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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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음(無音) 붕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