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과되는 잠재력

한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사교육의 리듬 안으로 들어간다.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아이들은 이미 여러 개의 학원 스케줄 속에서 하루를 나눈다. 미술, 체육, 음악, 언어, 수학까지 활동의 이름은 다양하지만, 아이들의 시간은 놀라울 만큼 촘촘하게 배치된다.

이 풍경은 종종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는 이유로 국제 사회에서 비판받는다. 어린 나이에 성취와 비교의 언어에 노출되는 삶이 과연 건강한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질문할 만하다. 동시에 이 구조를 전부 하나의 문제로만 묶어 말하기에는, 쉽게 정리되지 않는 점도 남는다. 무엇이 아이에게 부담이 되는지, 그리고 무엇이 아이에게 기회가 되는지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아이들의 시간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간다. 미취학 단계에서 학업은 거의 요구되지 않고, 숫자와 문자를 배우는 시점도 훨씬 늦다. 그 이전의 시간은 놀이로 채워진다. 숲에서 뛰고, 돌을 줍고, 동네 체육관에서 달리며, 주말이면 지역 축구 모임이나 교회 음악 놀이에 간다. 가르침은 전문 강사의 영역이라기보다 지역 공동체의 느슨한 역할 분담에 가깝다. 나 또한 아이가 자유롭게 뛰놀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이 방식이 아이에게 잘 맞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요구도, 따라가야 할 기준도 없는 시간이 아이를 가볍게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자 조금씩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활동에 오래 머무르는지, 어떤 순간에 유독 집중하는지가 점점 분명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관심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어도, 독일에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미술에 흥미를 보이는 아이를 위해 인근의 그림 수업에 보내보았지만,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체계적인 배움이라기보다 ‘열어둔 놀이’에 가까웠다. 재료는 충분히 제공되었지만, 표현을 다듬거나 기초를 쌓는 과정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수업을 맡는 이가 전문 강사가 아닌 경우도 흔했고, 방학이 시작되면 한 달 가까이 수업이 중단되는 일도 특별하지 않았다. 이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배움이 이어진다는 감각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같은 시기, 한국에 있는 친구들의 아이들은 전혀 다른 환경에 놓여 있었다. 미술, 발레, 피아노, 수학, 언어, 과학 실험까지, 비교적 이른 나이부터 다양한 영역을 경험하고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는 분명한 스트레스가 따르고, 과도한 경쟁과 압박이라는 문제도 존재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사회에는 아이의 반응을 읽어내고, 잠재적인 능력을 해석하며, 그것을 하나의 방향으로 연결해주는 구조가 존재한다. 아이가 어떤 활동에 두각을 보일 때, 그 신호는 비교적 빠르게 포착되고, 전문 트레이너와 기관을 통해 ‘계속해볼 수 있는 길’로 이어진다. 그 방향이 언제나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재능이 우연처럼 스쳐 지나가다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시아에 유난히 영재가 많다는 말은 그래서 오해에 가깝다. 그것은 특정 지역에서 더 특별한 아이들이 태어난다는 뜻이라기보다, 재능을 발견하고 해석하는 구조가 더 이르게 작동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반면 독일에서는 영재가 없어서가 아니라, 발견되는 경로 자체가 희박하다. 놀이가 중심이 되는 유년기에는 드러난 능력을 해석할 언어가 부족하고, 이후에도 그것을 이어갈 전문적인 통로는 제한적이다. 같은 재능을 가진 아이라도, 어떤 사회에서는 이름을 얻고, 어떤 사회에서는 조용히 지나쳐진다. 차이는 아이가 아니라 환경에서 만들어진다.

독일식 교육의 장점은 분명하다. 아이들은 비교 속에서 자라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기 속도를 유지한다. 그러나 그 평온함의 이면에는 자주 이야기되지 않는 공백이 있다. 아이가 관심을 보일 때 그것을 이어갈 수 있는 전문성과 연속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과 잠재력을 발견하는 일은 반드시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압박을 주지 않으면서도, 관심과 능력을 읽어내고 방향을 제시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결국 문제는 어느 쪽이 더 옳으냐가 아니다. 무엇이 더 많이 보이고, 무엇이 더 쉽게 지나쳐지는가에 가깝다. 재능은 특별한 아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드러날 수 있는 환경을 만난 아이에게만 또렷해진다. 그리고 그 환경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아이들의 삶에 흔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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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불리기까지